희랍사상이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2007080006 강대웅

 

 현대인들을 현대 이전의 시대 사람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 주의, 그리고 과도한 욕심으로 인한 자연 파괴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문제일 지도 모른다.

 왜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다른 사람의 그것 보다 우선시하는 것일까? 왜 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 하게 된 것일까? 왜 자신들의 욕망으로 인해 자연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파괴해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현대인들이 진리에서 마음이 멀어졌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육체를 사랑하여 자신의 육체의 기쁨을 위해서 먹고 마시고 욕망하는 것에서 이 모든 문제가 나온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다 보니 나의 옆집에, 그리고 윗집 아랫집에 어떤 이웃이 사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옆집에서 불량 만두를 만들어서 파는지, 아랫집에서 불량 기름을 만들어서 파는지 관심이 없게 된다. 그리고 그들 또한 자신의 경제적 욕심만 채우면 그만일 뿐,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불편을 겪거나 탈이 난다고 해도 자신과는 별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질 만능 주의는 이러한 개인주의에서 나온다. 무분별한 자연 파괴와 개발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들의 입장은 고사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한 자연 환경마저도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파괴하고 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희랍 사상에서는 소크라테스와 그 주변에 따르던 이들을 통해서 선에의 의지를 가지고 진리를 추구하는 참 철인의 모습을 현 시대의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이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자였다. 이들이 추구하여 알았던 진리는, 중요한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하늘 위의 이데아에서 온 것이며, 이 세상 모든 것은 것 또한 이데아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내가 곧 우주고 우주가 곧 나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자신의 영혼을 닦아서 진리를 알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너와 내가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자신의 욕심만을 생각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한번이라도 둘러보고 생각하게 되며, 나의 나쁜 생각과 행동이 결국은 내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나와 내 육체를 통한 욕심을 버리고 영혼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이를 통해 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희랍 철학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인 듯하다

 

 

   

 


:

철학적 사유란 무엇이며, 철학함이란 무엇을 뜻하는가그리고

철학적 사유와 철학함을 이행하는 방법과 과정은 어떠한 것인가?

 

대웅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호기심,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인간의 본성, 본질, 의미, 가치 등을 궁금해 한다. 이러한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 인문학,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철학은 인문학 중에서도 이러한 인간이란 무엇인가 대한 질문에 가장 근본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철학은 인간에 대한 이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진실,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즉 앎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학문으로써 인간의  굼금증을 해결 하려고 하는 학문인 것이다.

철학에서 이러한 앎을 얻는 방법은 이성적 사유 활동을 통하여 끊임없이 의문을 가져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본질에 다다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철학은 이성으로 하는 것이지만 이성만으로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이성으로 의심하고 의심하여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본질을 알려고 한다면 결국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바로 그것뿐(Cogito, ergo sum)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관을 통하게 되면 의심할 수 없는 것, 우리가 알고자 하는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 이러한 합리적이고 연역적인 이성적 사유 활동을 통해 직관하는 능력을 연마하여, 근본의 근본을 탐구하면서 최초의 근원에 도달하려는 활동이 철학이고 철학적 사유이다

그렇다면 철학 함이란 문엇인가? 철학함 이라는 것은 곧 이러한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는 고장되어 있지 않으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언어란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것임으로, 거기에 본질 그 자체인 것을 밀어 넣으면 변형되어, 그 자체를 언어로 드러내지 못한다. 따라서 진리는 언어로 된 지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얻어야만 한다.

선각자, 이러한 진리를 먼저 깨달고 실천한 이라고 전해지는 사람으로는 부처님과 예수님이 있다. 이들이 철학자로 분류 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이들이 인간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들이 깨달은 진리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 그리고 ‘자비’ 이다. 이것은 곳 인간에 대한 인간 상호간의 존중과 이해를 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믿는 것,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기는 것을 하나 씩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은 옳다고 생각 하면서도 타인의 생각은 틀렸다고 쉽게 치부해 버리곤 한다. 그렇다면 너와 나가 다르지 않은, 공통된 진리는 무엇인가? 철학으로 이러한 참 진리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나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너와 나가 다르지 않고, 너와 나의 진리가 같다는 것, 즉 참 진리를 얻으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 결국 나를 비워 낸다는 것은 내 육체에 대한 사랑, 육체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쾌락, 욕정, 욕심 등을 버리는 것이다. 이렇듯 나와 내 육체를 잊고 영혼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다면, 나를 버리고 그 비워진 자리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나를 버리고 너와 세상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것, 바로 비워 냄으로써 본질을 체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철학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