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론의 논변들                        

강대웅

 

 

 신은 존재 하는가? 신이 존재 한다는 것을 인간은 어떻게 알수 있는가? 신이 있다는 것은 종교를 믿으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종교를 가지고 있으나 회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인장할 수 있는, 믿음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논리적이고 학문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증명할 수 있을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학문적으로 증명한 여러 주장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존재론적 주장과 우주론적 주장, 그리고 설계론적(목적론적)주장이다. 존재론적 주장은 신이 존재하지 않음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 우주론적 증명은 세계에 관한 경험적인 사실로 시작하여, 이러한 사실들의 원인을 설명하려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무한 한 연쇄로 우연히 일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필연적인 존재, 혹은 제1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설계론적 주장은 세계의 질서·아름다움, 그리고 명확한 목적성이 이 세계를 설계한 지성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존재론적 주장

 존재론적 주장은 주로 종교적 지성인에 의해 사용되어진 주장으로서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상상할 수 없다는 신앙적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만약 최상의 완전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음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1. 사람들은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2. 가장 위대한 존재자가 마음속의 관념으로서만 존재한다고 가정해 보자.

3. 실재하는 존재자는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위대하다.

4.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보다 더 위대한 존재자, 즉 실재하는 존재자를 생각해 볼 수 있다.

5. 그런데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보다 더 위대한 존재자는 없다.

6.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존재자는 실제로 존재한다.

 

 이러한 존재론적 주장을 한 안셀무스는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즉 신)를 모르는 사람도 존재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일단 신의 존재, 가장 위대하면서 가능한 존재자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대는 더 이상 신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셀무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고닐로는, 우리는 가장 위대한 가능 존재자를 생각 하거나 실제로 이해할 수 없음으로 그의 첫 번째 논변 부터가 잘못 되었다고 말한다.

 현대의 안셀무스주의자들은 적절한 신 개념은 논리적인 필연성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신은 최대로 완전하다고 생각 되어져야 하고, “위대한 존재자가 갖춰야 할 상호 양립가능한 속성들의 최대로 완전한 집합을 필연적으로” 그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필연적 존재는 위대하게 만드는 속성이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존재함이 하나의 정의에 포함될 수 있는 속성이나 서술이라면, 그리고 신의 정의에 포함되어야만 하는 바람직한 속성이라고 한다면 존재론적 논증은 타당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존재가 존재함이라는 속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존재함이 문법적으로는 서술어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것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 아주 다른 논리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신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하나의 입증으로 간주되는 존재론적 논증은 실패하게 된다

 

 

우주론적 주장

 우주론적 증명은 세계의 개체사물이나 그 존재의 사실성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신을 그 궁극적 원인으로 추론하며, 세계가 그 자체의 이해능력과 존재를 초월하는 어떤 존재에 의존해 있다고 본다. 우주론적 증명의 고전적인 진술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Summa Theologica(1부 제2 3)에 실려있다. 우주론적 주장은 세계에 관한 우리의 경험적인 사실들의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의 존재, 우연적 존재자들은 인과 조건들의 무한한 연쇄로는 설명될 수 없음으로 이러한 것들의 원인이 되는 필연적 존재자, 혹은 인격적인 작인이 존재해야 그런 사실들이 설명된다고 말한다. 우주론적 논변은 두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클락, 테일러 등이 주장한 바에 의하면 제일 원인은 반드시 시간상의 최초 원인이 될 필요는 없지만, 다른 모든 것이 지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의존해야 하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우주론적 증명의 또 다른 형태는 알 킨디와 알 가잘리라는 아랍 철학자들이 주장한 칼람의 논변으로 시간상의 제일 원인을 논증한다.

 

칼람의 우주론적 주장

1. 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은 그것의 존재 원인을 갖는다.

2. 우주는 존재하기 시작했다.

3. 그럼으로 우주는 그것의 존재 원인을 갖는다.

4. 현실태적 무한(actual infinite)은 존재할 수 없다.

5. 사건들의 시간적 연속으로서 시초가 없는 연속은 현실태적 무한이다.

6. 그러므로 사건들의 시간적 연속으로서 시초가 없는 연속은 존재할 수 없다.

 

 전제 1은 직관적으로 명백하여 모든 것이 무()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하지 않는 한 참이다. 이러한 칼람 우주론적 논변은 이슬람교에 있어서 신이 존재함에 대한 표준적인 증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구 철학자들은 무한한 시간적 소급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서구의 철학자들이 주장한 또다른 우주론적 주장에서는 무한한 시간적 소급들이 가능함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신이 존재함에 대한 다섯가지 증거들을 그가 어떤 공시적 질서라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특징들 - 동작(변화), 인과작 행위, 생성, 소멸하는 존재들, 가치의 등급, 그리고 질서 - 위에다 근거를 둔다. 이들은 비록 세계가 시작이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세계를 성명하기 위해서는 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존재하며 그 신이 모든 것의 존재함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변화나 인과관계 같은 것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아퀴나스는 무한한 시간적 역행들이 가능함을 인정한다. 각각의 변화나 인과행위는 앞의 것에 의해서 선행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일제히 일어나는 일련의 변화나 원인은 반드시 첫 번재 것들 - 그 자신 변화의 요소이기는 하지만, 다른 것으로부터 파생되지 않거나 파생될 수 없는 변화나 인과 행위의 영향을 받지 않는 행위 - 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변화나 인과적 행위의 궁극적 근거는 신이다.

 

1. 만약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것의 존재는 논리적으로 필연적이거나, 또는 어떤 다른 것들이 그것을 존재하도록 원인을 제공한다.

2. 우연적인 존재가 존재함은 칠연적인 것이 아니다.

3. 하나의 우연적인 존재는 어떤 다른 존재에 의하여 존재하도록 만들어 졌다.

4. 일련의 우발적인 존재들은 첫 번째 것을 가지고 잇거나, 또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5. 만약 그 시리즈가 첫 번째 존재를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하나의 필연적 존재가 존재하며, 이것이 그 첫 번째 존재를 존재하게 만든다.

6. 만약 일련의 우발적 존재들이 첫 번째 것을 가지지 않는다면 하나의 필연적 존재가 존재하며, 이것이 시리즈 전체를 존재하게 만든다.

7. 만약 우발적인 것들이 존재 한다면, 그 존재들이 있게 한 필연적인 존재가 존재한다.

8. 우발적인 존재들은 존재한다.

9. 하나의 필연적인 존재가 있으며, 이것이 우발적인 존재들을 존재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우주론적 주장의 이러한 3번과 6번으로 부터의 추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주론적인 주장은 충분한 이유의 원칙 위에 의존한다. 그 원칙의 가장 강한 변형은 신의 자유와 모순 된다. 약화된 변형들은 모순되지 않으며, 그 주장의 결론을 이글어 내기에 충분할 만큼 강력하다. 충분한 이유의 원칙은 하나의 실용적인 일반화로, 합리적인 사고의 전제 조건으로, 그리고 필연적인 진리로 이해되어져 왔다. 그 원칙은 인간 탐구의 성공으로부터 약간의 지지를 받는다. 그것은 이성의 요구를 나타낼 수도 있으며, 어떤 것들을 필연적인 진리로 승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약간의 지지를 보내며, 그 원칙의 약한 변형들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어떤 강한 이유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약화된 변형 중의 어떤 것은 그것에 대한 반대안보다 더 타당할 수 있다.

 

존재론적(목적론적)주장

 존재론적 주장은 유신론적 주장 중에서 가장 널리 널리 통요되어온 주장이다. 목적론적 증명은 세계에 있는 사물이 종말이나 목적을 위해 기능을 발휘하는 우주의 기능적 질서를 관찰하는 데서 출발한다. 의도적인 행동은 결국 이지적(理智的)인 목적을 지닌 존재가 계획하거나 감독하는 것이라는 이 논증은 최종 원인에 관한 개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엄격히 말하자면 우주론적 논증의 한 형태이다. 이러한 논증을 한 대표적인 사람으로 데이비드 흄을 둘 수 있다. 그는 이러한 논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가운데 우주를 질서정연한 기계로 간주한다. 설계론적 주장은 우리가 살고있는 현상 세계에 존재하는 특징 - 아름다움, 인식될 수 있는 질서, 생명 지각 등 - 에 의존한다. 즉 이 세계가 지적인 설계를 보여주는 흔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떠한 것 보다 복잡하지만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질서 정연하다. 따라서 이러한 것을 설계하고 창조한 완벽한 존재의 흔적을 그 자연 안에서 찾을 수 있다.

 18, 9세기 설계론적 주장은 동물의 신체 구조, 눈같은 부분, 그리고 위성의 움직임에 중점을 두었다. 이 주장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들은 그러한 것들이 분명한 설계를 보여준다는 것은 인정 하지만, 그것들이 과학에 의해 가장 잘 설명된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비평가들은 동물의 신체 구조와, 부분들이 설계자 보다는 진화론에 의해서 더 적절하게 설명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현대의 설계론적 주장의 옹호자들은 우주의 보다 보편적인 특성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설계론적 주장이 비록 성공적일 지라도 그것은 단지 세계가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정신의 목적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그것은 이 마음이 전지전능 하다거나, 완벽하게 선하다는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 증거가 몇몇의 협력하는 설계자가 있기 보다는 단지 하나의 신적인 정신이 있다는 것조차도 보여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설계론적 주장은 신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근거를 확립해 주지 않는다

 

 

참고 서적

종교의 철학적 의미 / 마이클 피터슨 외 / 종호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2005

종교 철학, 4개정판 / H / 김희수 / 동문선 / 2005

 

 

  

 

     

 

 

:

종교철학의 탐구영역 - 종교철학 제 4강좌 <종교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강대웅

 

 

 종교 철학의 탐구 영역을 알아보기 위해 우선 철학과 종교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종교철학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한다. 우선 철학은 질문을 하는 학문이다. 철학은 모든 대상을 학문적 대상으로 관계지우며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종교는 무엇인가? 철학이 질문을 던졌다면 종교는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철학에는 위대한 물음이 있고, 종교에는 위대한 답이 있다” 고 말한다. 이러한 인간의 삶과 죽음, 존재에 관련된 물음에 부응해 답을 주는 것이 종교이다. 하지만 그 답을 언어로 하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말했다. 즉 종교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해서 믿지 않고 알려고 한다면 그것은 종교의 본질이 아니라 외적 현상을 아는데 그칠 뿐이다.

 그렇다면 종교 철학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가? 백과사전에서는 종교 철학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종교의 제현상 ·본질 ·의미 ·가치 등을 종합적 가치체계와 사고조직에서 분석 ·비판 ·종합 ·이해해간다면 이것은 곧 종교철학이다. 종교철학은 종교라는 역동적 실체(力動的實體)를 철학의 대상으로 삼아 탐구하는 철학의 한 특수분야이다. 인간의 삶과 가장 본원적으로 관계되며, 또 본능적 혹은 생득적(生得的) 본질로 언급되는 초자연적 힘과 초월자의 본질을 신화적 ·민속적 ·생득적 ·예전적(禮典的) 혹은 특수문화적인 차원에서 발생 ·발전 ·소멸의 과정 등과 더불어 종합적으로 철학한다면(Philosophieren) 이것을 우리는 종교철학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종교철학이란 개념은 단순히 종교학 ·종교현상학 혹은 종교심리학과 구별되며 ‘종교에 관하여 철학하는 학문’ 혹은 ‘종교란 본질을 철학의 핵심적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진리체계를 과학화해야 하며, 그 과학성은 보편적이고 유효하며 자명한 과학적 체계를 요구한다.  . ⓒ 두산백과사전"

   종교의 제현상 ·본질 ·의미 ·가치 등을 종합적 가치체계와 사고조직에서 분석 ·비판 ·종합 ·이해하여 진리체계를 과학화하고, 그 과학성은 보편적이고 유효하며 자명한 과학적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가능하다고 보고 백과사전을 유의 하면서 황필호의 종교철학11강좌의 제 4강좌 <종교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나와 있는 종교에 학문적으로 접급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 보자.

 

종교에 대한 학문적 접근방법

첫째. 변호학적 방법 - 자신이 몸담고 있는(믿는) 종교의 입장에서 접근

둘째. 종교학적 방법 - 객관적 입장에서 역사속에 나타난 종교현상을 연구

셋째. 철학적 방법 - 객관적 입장에서 어느 한 종교 교리의 일관성과 여러 종교 교리들의 정합성을 연구

 

첫째. 변호학적 방법은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끝까지 견지 하면서 종교를 학문적으로 다룬다. 따라서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며 보편적이고 자명한 과학적 체계를 갖추기 힘들다.

 

둘째. 종교학적 접근 방법은 역사 속에 나타난 종교의 여러 모습들(종교 재료, 표현, 현상)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이다. 변호학적 방식이 주관적이고 평가적이었다면, 종교학적 방법은 객관적이고 기술적이다. 하지만 종교는 완전히 객관적인 접근이 힘들뿐더러, 객관적으로 연구한다 해도 이 세상 모든 종교를 연구 할 수 없음으로 연구 할 특정 종교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미 주관이 들어갈 수 있다. 종교학은 겉으로 드러난 종교 현상을 연구를 통해 그 종교의 본질을 알려고 한다. 하지만 현상에 나타나는 본질은 본질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종교학자가 드러 내는 것은 어쩌면 종교의 일부분이다.

 

셋째. 철학적 방법

종교 교리 자체의 일관성과 정합성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종교학은 종교의 현상에 대해 기술 하는 것이었다면, 종교 철학자는 종교 현상을 일관성 있게 설명할 뿐 아니라 여러 종교가 주장하는 각기 다른 진리의 근거들을 정합적으로 설명해 보인다.

허드슨이 밝히는 종교학자와 종교철학자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자.
1)
철학자는 신학자가 제공한 설명의 일관성을 검토한다.

2) 철학자는 신학자가 제공한 설명의 전제를 검토한다.

3)철학자는 종교적 질문과 비종교적 질문의 ‘논리적 변경선’을 보여준다. 이를 ‘표면문법’과 ‘심층문법’의 차이점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종교의 화두 21세기의 과학.

21세기는 종교와 과학의 싸움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과학되된 사회, 즉 정보화 사회가 될 것이다. 따라서 변호학자, 종교학자, 종교 철학자 모두 새로운 정보 과학의 영향력을 받게 될 것이다. 배국원은 이러한 과학의 영향을 두가지로 정리 하였다.

1) 모든 종교에 대한 정보량이 엄청나게 증가되고 있다.

2) 정보의 양적 증가는 학자들에게 전통적으로 내려온 사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강요한다.

 

변호학은 자신의 종교를 지금의 새로운 시대에 맞춰서 읽어야 하는 해석학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제 인간은 과학을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조오지 버클리는 도구주의를 주장하여 이미 18C 초에 종교와 과학의 분리를 주장하였다. 자신의 종교적 세계를 유지 하면서도 자연과학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변호학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새시대에 맞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정체서의 위기를 맞을수도 있다.

종교학자는 오히려 도움을 받을 지 모른다. 컴퓨터와 인터넷등을 통하여 보다 효율적이고 쉽게 각 종교에 대한 자료를 모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종교철학이다. 그러나 이제 생명, 신 존재 등을 현상학적 방법과 분석학적 방법등 철학적 접근방법으로 탐구하였다면,이제 그 탐구 방법 자체에 대한 도전을 받고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정신과 영혼의 문제와 ‘타인의 마음’의 문제가 세로운 방향으로 모색되며 이러한 작업은 반증거주의,반기초주의,해체주의 등의 이름으로 활발히 거론 중이다.

 

이상 종교를 학문으로 접금하는 세가지 방법과 그 방법의 특징을 간략하게 알아 보았다. 마지막으로 이 세가지 방법을 포함하여 모든 종교를 학문으로 탐구하는 학문이 주의 해야 할 것은 자신이 선택한 길만이 옳다거나, 다른 길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보는것은 물론, 같은 종교 안에서도 접근하는 학분적 방식에 따라 우열을 다지는 것을 금반 두어야 함을 뜻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변호학과 종교학, 종교철학이 서로 손을 잡고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이는 학문 뿐만이 아니라 각기 다른 종교들이 서로 포용하고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종교 철학의 가장 큰 괌심사는 신 존제 증명일 것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이 신을 존재론적, 우주론적, 목적론적, 활률론적, 도적론적, 역사론적 방법등 유신론적인 입장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탐구 하였다. 또한 못지 않은 철학자들이 무신론적 입장에서 신존재의 증명에서 얻을 수 있는 의미보다는 다른 이해의 차원에서 종교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결국은 유신론적 종교철학도 무신론적 종교철학도 종교의 필요성을 각각 다른 형식과 방법으로 긍정하며 요청하고 있다.

 모든 종교와 학문은 결국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위해 존제한다는 공통점으로 모든 학문과 종교는 만날 수 있으며, 종교의 위기라는 21세기이니 만큼 꼭 만나야 할 것이다.  

 


:

한국 종교들 무엇이 문제인가?                                     

대웅

 

 한국은 무속신앙, 유교, 불교, 기독교와 신흥 종교라 할 수 있는 원불교, 통일교, 증산교, 천리교,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그리고 최근에는 이슬람교도 들어와 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특정 종교를 국민의 대다수가 믿으며 그 종교를 ‘국교’ 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표 종교가 기독교∙천주교∙불교 세 가지이며 그 외에도 다수의 소수 종교가 존재한다.  

 통계청의 종교인구 조사결과 우리나라 15세 이상 인구 3590만여명 가운데 불교인구가 26.3% 943만여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신교는 조사대상 전체인구 가운데 18.6% 667만여명, 천주교는 7% 250만여명으로 조사돼 불교인구가 이 두 종파를 합한 인구보다도 26만여명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 유교는 0.7%, 원불교 0.2%, 천도교 0.1% 기타종교 0.8%로 조사됐다.

 

 이렇듯 다른 나라에 비해 다양한 종교가 한 나라 안에서 공존하고 있으며, 각 종교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과거에 박해는 있었지만 종교로 인한 동족간의 전쟁은 없었다. 따라서 언듯 보기엔 한국은 다양한 종교가 서로를 존중하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종교간의 대화가 활발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본 바탕은 무속신앙이며, 그 위에 유교적 가치관을 쌓고, 그 위에 다시 불교 혹은 기독교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모든 한국인은 종교를 가지고 있던 가지고 있지 않던 모두 무속신앙과 유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무속신앙과 유교를 종교라고 생각하는 국민보다는 유교적 가치관에 의해 상례, 제례 등 전통적 종교의례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이를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와 불교는 다 같이 무속신앙 적이고 유교적이면서도 서로 배타적이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한국인의 가치관>(1990)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1998) 앙케이트 조사 분석결과에 따르면 한국 종교인의 숫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3대 종교 중에서, 배타적 성향을 나타내는 종교단체가 개신교임을 보여주고 있다. 설문지는 부정적  질문형태로서 응답자의 견해를 알아보고, 반대로 긍정적 질문형태를 통해 반응자의 태도를 조사했다. 예들면 종교인의 배타적 성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던진 질문 “진정한 종교는 하나뿐이다”에 찬동하는 종교인 비율은 불교가 19 %, 천주교가 23 %, 개신교가 45 %로 나타났다.

 타종교에 대한  포용적 태도의 비율을 알아보는 질문 “ 여러 종교의 교리는 서로 틀린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 같거나 비슷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생각에 찬성하는 비율은 불교인 87.0%, 천주교 85.4%, 개신교 61.7%로 나타났다.

 또한 현대사회연구소가 행한 <우리나라 종교지도자들의 의식에 대한 조사연구>(1990)에 의하면 자기가 귀의하고 있는 종교 이외 타종교는 “철저히 배격해야 할 대상”이라고 보는 성직들의 응답 비율은 승려가 3.0 %  임에 비하여 개신교 목사는 30.5 %로 나타났다.

 하지만 만약 한국이 각기 다른 종교가 서로 공존하면서 공정하게 경쟁하는 진정한 종교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나라가 된다면 이는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성취하지 못한 위대한 과업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종교가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이미 종교가 있는 사람들에게 무리하게 선교하여 개종 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스스로 다른 종교로 개종하려는 사람과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는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 종교는 규모의 대형화를 이루려는 욕심을 버리고 작은 공동체 중심의 종교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대형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다른 종교를 압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종교 집단의 대형화는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교회를 예로 들어 본다면 대형교회로 인하여 가장 심한 피해를 입은 곳은 다름 아닌 주변의 소형교회들이다. 대형교회는

화려한 시설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신도들을 모으자, 이로인해 그 주변의 작은 교회들의 운영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따라서 대형교회의 출현으로 작은 교회는 고사하고 흡수되었으며 수백 명의 목회자들과 수천 명의 장로와 권사들이 함께 모여 봉사하는 초 대형교회가 생겨났다.

또한 종교집단의 대형화는 결국 권략에 대한 욕심과 비리로 연결된다. 조계종 스님들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의 패싸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세무 체납과 불법 승계, 자식 혹은 친족에게 교회를 개인 소유인양 세속 하는 등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문제점만 해도 상당하다.    과거 유럽에서 구교 성직자들이 그 권력이 거대화 되면서 부패한 것을 비판하여 신교가 생겨났듯이, 거대화 되어 있는 종교와 그 종교의 성직자들은 스스로를 털어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낮은 곳으로 내려와 작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사랑을 나누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렇듯 스스로 몸을 낮추면 서로 싸울 일이 없다.       

 

 

 

 

   

    

 


: